Untold Story

Jul 29

너와 나의 영역에 대하여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차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는 퇴근길 교차로의 한 쪽 횡단 보도에 있다. 하루를 마무리했다는 뿌듯한 표정으로 차도와 인도를 구분 짓는 턱에 앉아 있는데, 제작년 쯤 유행했을 법한 적당히 길어 가르마를 탄 짙은 머리숱에 땀이 송송 배여 있고, 배여 나온 땀은 이마 위에서 지는 노을에 적당하게 노출되어 마지막 열기를 내뿜고 있다.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지나간 하루 치고는 저녁 어스름의 풍경이 너무나 평온하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출장을 와서 큰 공사 수주건의 협상이 잘 마무리 되어, 기분 좋게 샤워하고 맥주 한 잔할 요량으로 계약 업체에서 예약 해 둔 1급 호텔로 향하던 30대 초반의 남자는 땀을 흘리며 횡단보도에 앉아있던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를 보며 알 수 없는 상념에 빠졌다. 그가 보기에 너무나 형편 없는 행색을 하고 있던 피케 셔츠의 남자의 표정이 너무나 즐거워 보였다는 것이 그도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땀은 이마에 차고, 군청색 바탕에 하얀색 줄이 새겨진 반팔 피케 셔츠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왼쪽 가슴에는 말을 탄 사람이 말렛을 휘두르고 있는 유명 브랜드의 로고 처럼 보이지만 사실 휘두르고 있는 것은 말렛이 아니고 밧줄이다. 그 셔츠 안에 입은 민소매 런닝셔츠의 자욱을 따라 땀이 선을 이루고 있다. 그는 마지막 땀을 날려보내려는 듯 오른손으로 앞 단추 트인 부분을 잡고 앞뒤로 턴다. 이내 신호가 바뀌어 그의 앞을 지나던 직진 차량들이 사라지고, 그에게 집으로 가는 마지막 횡단보도가 열린다.

그 피케 셔츠 남자의 밝은 표정이 계속 신경이 쓰이는 남자는 차 안 뒷자리에서 방금 전 지나 온 횡단 보도를 홱 돌려 쳐다본다. 큰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부러워할 정도의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그 남자. 자신이 느끼고 있는 지금 성취감이 과연 진짜인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러가는 설레는 표정으로 그의 뒤에는 풍선을 가득 담은 수레가 따라가고 있고, 분명 그 형형색색의 풍선들은 그의 여자 앞에서 그녀의 행복해하는 표정을 스치며 하늘로 날아 갈 것이다.

자기 앞으로 활짝 열린 횡단보도를 힘차게 일어나 걸어가는 피케 셔츠 남자의 왼손에는 철제 손잡이가 들려있다. 그 손잡이 뒤로는 소형차 크기만 한 손수레가 힘겹게 끌려가고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공병이 채워져 있다. 그 공병들은 박스에 담겨있지 않고 일정한 규칙 없이 수레에 쏟아져 있었기에 그가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길에서 주운 것이라고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그는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 길가에 집촌을 이루고 있는 판자집 중 한 곳에 들어가 마당 우물에서 공병들을 씻고 고르게 세워둔 후 밤 12시에 잠들어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났다.


Page 1 of 2